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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한나

10월 16일부터 25일까지 열린 2013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발이 열흘간의 대장정을 마쳤습니다. 이번 네마프2013은 총 20개국의 126편의 작품, 마스터클래스 5회, 공연7회, 관객과의 대화 23회, 포럼, 작가프레젠테이션 등의 프로그램으로 관객을 맞이했습니다. 폐막식은‘나인 비트 홀릭’의 뚜들김 공연으로 첫 순서를 열었습니다. 쑨쉰 작가님이 만들어주신 네마프2013의 트레일러 영상을 떠오르게 하는 흥겨운 무대였습니다. 이어서, 네마프2013의 시상식이 있었습니다. 글로컬 구애전-전시부문의 심사위원으로는 김두진 작가, 김현주 교수님께서 수고해주셨습니다. 심사는 작품이 얼마나 관객의 마음에 깊이 공명하는지에 초점을 두고 이뤄졌다고 합니다. 전시부문 아이공 상에는 의 알렉산더 위테커가, 뉴미디어아트 상..
비가 내린다. 비오는 날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 비내리는 텅 빈 창밖의 운동장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시간이 내 학생 시절의 가장 소중한 기억임에 감사하다. 우산을 써도 젖던 큰 가방을 메고 오르던 비오는 등굣길, 입구에서 실내화를 갈아신으며 우산을 탈탈 털다가 빗물이 튀어 얼굴을 찡그린 일, 천둥 치면 반 친구들과 다같이 호들갑 떨던 일, 이때 아니면 비 맞을 일 없다며 폭우 속에서 가만히 서 있어본 일. 내 학생 시절의 축복이다. 오늘 오전 수업 중 천둥이 크게 쳤다. 3층 학생들이 놀라 소리치는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이 귀여운 아이들 속에 내가 있다니. 이 행복은 무엇이지! 이렇게 쉽게 행복하다고 말해도 되나. 좋은 걸 좋다고 말하지 않으려고 애써 노력하는 사람으로써 인정하고 싶지 않은데...행..
6시에 씻고 7시 15분쯤 지하철 타고, 버스타고 학교에 도착했다.. 2년 전까지 이 역에서 내려 출퇴근 했는데, 오늘은 같은 역에서 내려, 다른 곳으로 가자니 알 수 없는 인생이지 싶었다. 아침 요깃거리로 역에서 단팥빵을 샀는데 먹지 않고 그대로 가져와서 지금 집에서 먹으며 글을 쓴다. 무슨 일이든 첫 날은 정신이 없는데, 왜인지 생각보다 말짱하다;; - 5월을 보낼 곳은 서울의 한 특수학교 . 대학에서는 발달장애를 주로 다루고, 나도 감각장애보다는 발달장애에 관심이 더 많지만, 교직에서 자주 만날 수 없을 장애유형의 학생들을 만날 수 있단 생각에, 이 학교에 오고 싶었다. 발달장애와 달리 감각장애의 경우 인지에는 도전적 양상이 없는 학생들이 많다. (수정: 단순맹보다 시각중복장애학생이 더 많다.) 해..
초등학교 1학년 때 나는 학교 부적응자였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준비물을 챙겨가지 못하면 담임에게 뺨을 준비물 이름의 음절수만큼 맞았다. 스케치북을 안 가져오면, 스.케.치.북. 소리내면서 뺨 4대를 맞는 식. 뺨을 맞기 위해 8세들이 줄을 서있는 기이한 광경... 어느 날은 받아쓰기 100점을 맞아서, 담임이 공책에 별표 3개를 그려주며 사탕을 주었다. 그런데, 다시 보니, 하나가 틀렸는데 잘못 채점이 됐길래, 담임에게 '저 하나 틀렸어요.'라고 말했더니 별을 쓱쓱 두 줄로 지우고 사탕을 도로 가져 갔다...(그것이 최선이었을까.) 이런 이유로, 아침 10시가 넘어서야 엄마 손에 이끌려 교실 문에 들어선 날이 적지 않았다. 그 담임은 종업식 날에, 자신이 편애하던 학생 몇 명을 불러 따로 선물을 주..
선풍기 날 성기게 돌아가는 소리. 불완전한 떨림의 모터. 우리의 방을 잔잔하게 채우는 평화.
SB는 나를 매번 초라하게 만든다. 나의 예상을 빗겨가고, 앞서있는 사랑의 깊이. 희망에 차있다가도 잠에 완전히 녹아내리지 못한 채 새벽을 맞이하는 나날의 연속. 그 시간들 속의 승범. 나도 확신한 적 없는 내 삶의 가능성을 믿어주는 사람.
아침에 수영가고 다녀와서 밥먹고 집 근처 카페가서 책 읽고 아이들을 돌보고 웃고 가끔은 깊은 잠에 들지 못하기도 했던.
쓴다는 다짐을 또 한다. 내 잃어버린 시간들. 예전에는 글쓰기라는 게 누구나 가지고 있는 능력이기에 막말로 별 볼일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내가 가진 유일한 능력으로써 소중하다. 잘 쓰고 못 쓰고를 누군가는 판단하겠지만 내 속에 있는 건 오직 나만 정확히 적어낼 수 있을 따름이라서. 그렇기에 그 지난한 과업의 마침표를 찍어내고야 마는 작가를 존경한다. 하나의 서사를 완성한 작가들과 비할 바 못되지만, 일기들, 대학생 때 몇 곳에서 쓴 기사들, 홍보할 적 작성한 자료들은 내가 지금 아이폰 메모장에 짧은 글이라도 쓰게 만드는 힘이 되어주었다. '시작하고 맺는 일'은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작업이다. 고통스럽지만 개운하다. 글쓰기는 그렇다. 삶도 글쓰기처럼 살아낼 거다. 결국엔 마침표를 찍는. 책임을 지는. ..
190824 시인과 함께하는 시 모임에 참석했다. 다음주까지 총 2회 모임이다. 2회 모임 이후에 또 신청을 받는다고 한다. 또 신청해야지! 승범과의 데이트가 줄겠지만 그는 이해해줄거야. 같은 걸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설레고 만남이 길어지더라도 졸리지 않는다. 이해되지 않는 글을 붙들고 그 지점을 소리내 이야기하고 나누는 시간은 참으로 귀하다. 시모임, 그리고 낭독은 내가 있는 이곳에서 특별히 더 귀하기에. 시인님께서 시 몇 개를 가져오셨고 그것으로 시 같은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사실 시 아닌 것들이 어디 있겠나. 시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삶의 순간들이 적지 않으니까. 다음주에는 시 한편을 적어가기로 했다. 적은 시들을 학인들과 나눈다. 내가 쓴 시를 가까운 이들..
이탈리아 여행자로서 글쓰기를 시작하겠다는 다짐이 무려 1년도 넘게 지난 일...ㅋㅋㅋ 그 1년이 넘는 시간동안 중대하면서도 전혀 중대하지 않는 일이 닥쳤고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결과를 맞이하며 다시 안락한 일상을 되찾았다. 그동안의 좌절과 극복의 변주를 단 한 줄이라도, 달에 한 번이라도 써놓았다면 얼마나 의미있었을까 -_-. 그래서 난 오늘 또 다짐한다. 제발 기록하자. 스쳐지나가는 찰나의 감정도 적고 그 날의 이벤트도 적고. 그렇게 다 적으면 그게 곧 나일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