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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교육실습

교육실습을 앞두고

이상한 나라의 한나 2021. 5. 3. 00:13

초등학교 1학년 때 나는 학교 부적응자였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준비물을 챙겨가지 못하면 담임에게 뺨을 준비물 이름의 음절수만큼 맞았다. 스케치북을 안 가져오면, 스.케.치.북. 소리내면서 뺨 4대를 맞는 식. 뺨을 맞기 위해 8세들이 줄을 서있는 기이한 광경...

어느 날은 받아쓰기 100점을 맞아서, 담임이 공책에 별표 3개를 그려주며 사탕을 주었다. 그런데, 다시 보니, 하나가 틀렸는데 잘못 채점이 됐길래, 담임에게 '저 하나 틀렸어요.'라고 말했더니 별을 쓱쓱 두 줄로 지우고 사탕을 도로 가져 갔다...(그것이 최선이었을까.)

이런 이유로, 아침 10시가 넘어서야 엄마 손에 이끌려 교실 문에 들어선 날이 적지 않았다. 

그 담임은 종업식 날에, 자신이 편애하던 학생 몇 명을 불러 따로 선물을 주었다. 난 그 광경을 보고야 말았다...

그렇게 2학년이 되었고, 학교 부적응자였던 나는 완전히 다른 학생이 되었다.

할아버지 선생님이 담임이셨는데, 10시 넘어서 학교 오던 나를 교실에 1등으로 도착하는 학생으로 바꾸어 주셨다. 아무리 생각해도 극적인 변화다.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중 하나.

수학 문제만 잘 따라 읽어도 칭찬을 해주셨고, 나중에 대통령이 되면 청와대로 꼭 초청해달라며 대통령이 되겠다는 내 꿈을 진지하게 들어주셨다. 사실 대통령이 직업 끝판왕 같아 보여서 꿈이라고 말한 것뿐이지 대통령에 진심인 편은 아니었는데, 선생님을 청와대에 초청하고 싶어서 꽤 오랫동안 대통령을 꿈으로 간직했다. 또, 우리반 친구들이 밖에 나가고 싶어서, 칠판에 축구, 피구를 크게 적어 놓으면 매일 운동장에 나가 같이 뛰어주셨다. 즐거웠다.

이후에는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났다. 우리반이 전교에서 수학을 제일 못하는 반이어도(본인 수학 점수 40점), 자신의 점수에 창피해 하지 않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시는 대신 (왜냐면 반 전체가 다 못해서...ㅋㅋ)  수학 점수를 올려 놓으시려고 무지 애를 쓰셨다. 매일 아침마다 큰 초록 칠판에 아침에 풀어야 할 수학문제를 잔뜩 써놓으셨다. 그 결과 반에서 88점 최고점이 한 명 나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수학 제일 못하는 반이었지만...ㅋㅋㅋ

어떤 선생님은 리코더 덕후여서 아침에 학교에 오면 늘 리코더를 연주하고 계셨다. 물론 음악 시간 때마다 우리반은 리코더만 불었다. 리코더도 문방구에서 3천원에 파는 리코더에서 YAMAHA 바로크식 리코더로 갈아탔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당시 3만원? 정도 하던 리코더였는데 어떻게 샀는지 모르겠다;;) 어찌됐든 리코더의 신세계를 알려준 멋진 선생님이셨다.

돌아보니, 선생님은 좋은 그대로, 나쁜 그대로 아주 오랫동안 내 속에 있구나.

-

서울의 한 특수학교에서 한 달 간 교육실습을 한다.

한 달은 짧아서,  학생의 기억에 내가 어떤 존재로든 남겨지기를 바라는 건 큰 욕심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저, 학생의 잔잔한 일상에 돌을 던지지 않는 존재로만 있다가 와도 좋겠다.

설레기보다는 불안하다. 압도되는 기분. 잘하고 싶은 마음이 또 나를 위에서부터 누른다. 

으. 또 잠 안온다.

 

내가 할 수 있는 안에서, 딱 나만큼만 해내고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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